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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저금통 왕갈비 전문점, 모아둔다는 것에 대하여

용자8072 2026. 6. 15.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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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금통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나는 늘 무게부터 기억한다. 어릴 때 책상 위에 있던 도자기 돼지. 동전을 넣을 때마다 달칵, 하는 소리가 나고, 어느 날부터 흔들면 묵직한 소리가 났다.

그 무게가 시간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동전 하나가 하루였고, 가득 찬 저금통은 모아둔 날들이었다. 깨야만 꺼낼 수 있다는 점도 그렇다. 모은 것을 쓰려면 모은 형태를 부숴야 한다. 돼지를 깨야 동전이 나오는 그 구조가, 나는 늘 조금 슬펐다.

돼지저금통이 왜 하필 돼지인지에 대해서는 제법 그럴듯한 이야기가 있다. 중세 영어에 pygg라는 단어가 있었다. 돼지가 아니라 주황빛이 도는 값싼 점토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사람들은 그 점토로 부엌의 항아리를 빚었고, 거기에 잔돈을 넣어두곤 했다. pygg jar, 점토 항아리.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pygg라는 점토의 발음과 pig라는 돼지의 발음이 점점 가까워졌고, 어느 시점부터 도공들은 아예 그 항아리를 진짜 돼지 모양으로 빚기 시작했다.

발음이 사물을 만들어낸 셈이다. 단어가 먼저 있었고, 그 단어를 잘못 들은 귀가 형태를 결정했다. 나는 이런 종류의 오해를 좋아한다. 누군가의 작은 착각이 수백 년 뒤 전 세계 아이들의 책상 위에 분홍색 돼지를 올려놓았다는 사실이.

자리에 앉자 메뉴판이 보였다. 나무 액자에 넣은, 들판을 걷는 돼지들 사진을 배경으로 한 메뉴판이었다. 왕갈비 9,000원, 이베리코목살참 12,000원, 삼겹살 12,000원, 항정살 15,000원. 식사류에는 냉면과 김치굴국수와 소면, 공기밥과 된장찌개가 있었다.

소주와 맥주가 각각 5,000원. 가격은 솔직했고, 메뉴판은 오래되어 모서리가 살짝 닳아 있었다. 나는 닳은 모서리를 가진 메뉴판을 신뢰하는 편이다. 그것은 이 가게가 메뉴를 자주 바꾸지 않았다는 뜻이고, 바꾸지 않아도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왕갈비와 막창을 시켰다. 잠시 후 사장님이 밖에서 한 번 구워 내어주었다. 초벌, 이라고 부르는 그 과정이다. 불의 가장 거친 첫 단계를 주인장이 대신 맡아주는 것. 나는 이 분업이 좋았다. 고기를 굽는다는 행위에는 사실 두 개의 전혀 다른 시간이 들어 있다.

하나는 센 불에 표면을 단단히 익혀 육즙을 가두고 빛깔을 내는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적당히 데우며 입에 넣기 좋게 마무리하는 시간이다. 앞의 시간은 기술이고 뒤의 시간은 취향이다.

주인장은 기술을 맡고, 손님에게는 취향만 남겨준다. 테이블에 앉은 사람은 이미 한 번 익은 고기를 그저 자기 속도로 데우기만 하면 된다. 편리하다는 건 결국 누군가가 어려운 부분을 먼저 가져갔다는 뜻이다.

막창이 먼저 익었다. 불판 위에서 기름을 머금고 부풀어 오르는 막창을 보며, 나는 이 부위의 이름에 대해 생각했다. 막창의 막은 마지막이라는 뜻이다.

소나 돼지의 창자 가운데 가장 끝, 그러니까 직장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곱창은 소장, 대창은 대장, 그리고 막창은 그 끝. 동물의 몸에서 가장 마지막에 오는, 가장 끝까지 밀려난 부위.

한때는 버려지거나 헐값에 팔리던 자리였다. 그것이 지금은 고깃집 간판의 맨 앞에 적히는 이름이 되었다. 끝에 있던 것이 앞으로 온 것이다.

 

막창을 한 점 입에 넣었다. 겉은 초벌의 흔적으로 단단하고 고소했고, 속은 쫄깃하면서 안쪽에 부드러운 기름이 고여 있었다. 막창의 그 미끈하고 쫀득한 식감의 정체는 콜라겐이다. 콜라겐이라는 단어 자체가 그리스어 콜라, 그러니까 아교에서 왔다. 끓이면 들러붙는 물질, 풀이 되는 단백질.

적당한 열을 받으면 젤라틴으로 풀리면서 입안에서 녹는 듯한 질감을 만든다. 너무 약하면 질기고 너무 세면 딱딱해진다. 그 사이의 좁은 구간을 정확히 맞추는 일이, 초벌을 거친 막창에서는 한결 쉬웠다. 어려운 첫 단계가 이미 끝나 있었으니까.

왕갈비는 막창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음식이었다. 고기가 두툼했다. 흔히 양념갈비라고 하면 얇게 저며 양념에 흥건히 재운, 단맛이 앞서는 고기를 떠올리기 쉽다. 그런데 이 집의 왕갈비는 두께가 있었고, 양념이 과하지 않았다.

단맛이 고기를 가리지 않고, 고기 뒤에 살짝 물러서 있었다. 나는 양념이 절제된 갈비를 좋아한다. 양념이 강한 갈비는 사실 무엇을 굽든 비슷한 맛이 난다. 양념의 맛이지 고기의 맛이 아니기 때문이다.

양념을 줄인다는 건 고기 자체를 믿는다는 뜻이고, 두툼하게 썬다는 건 그 믿음에 시간을 더 준다는 뜻이다. 두꺼운 고기는 천천히 익고, 천천히 익은 고기는 안쪽에 육즙을 더 오래 붙잡는다.

갈비라는 말은 본래 뼈의 이름이다. 한자로는 늑골, 가슴을 둘러싼 갈빗대. 갈비라는 음식은 그러니까 부위가 아니라 뼈에서 이름을 빌려온 음식이다. 살이 아니라 뼈가 먼저 이름이 된 경우다.

뼈에 붙은 살이 가장 맛있다는 오래된 경험칙이, 부위의 이름조차 뼈로 부르게 만들었다. 갈비를 뜯는다는 표현에는 그래서 뼈가 전제되어 있다. 손으로 들고, 뼈를 쥐고, 살을 발라내는 그 원시적인 동작. 포크와 나이프가 닿지 않는 영역. 갈비는 도구를 거부하는 음식이다.

가게의 이름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돼지저금통. 식당이라는 곳도 어떤 의미에서는 저금통이 아닐까. 주인은 매일 아침 가게를 열어 하루치의 동전을 모은다.

손님 하나가 동전 하나다. 초벌을 해 내어주는 손, 닳은 메뉴판. 그런 것들이 하나씩 쌓여 한 가게의 시간을 채운다. 다만 저금통과 다른 점이 있다면, 식당은 깨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모은 것을 부수지 않고도 매일 조금씩 꺼내 쓸 수 있다. 동전 대신 사람을 모으고, 모은 사람을 깨뜨리지 않고 다시 돌려보낸다. 그게 식당이 저금통보다 다정한 점이다.

막창과 갈비를 양껏 먹고도 접시에는 아직 고기가 남아 있었다. 가격에 비해 양이 많았다. 양이 많다는 건 단순히 배가 부르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인심이고, 인심은 계산되지 않는 종류의 후함이다.

저금통에 정해진 양만 넣는 사람은 없다. 손에 잡히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넣는다. 양이 많은 가게의 접시에는 그런 무심한 후함이 담겨 있다.

마지막 막창 한 점을 집으며 '끝', 이라는 말이 자꾸 떠오르는 식사였다. 마지막 창자를 굽고, 하루의 끝을 보내고, 점토의 옛 이름이 돼지가 되어버린 오랜 착각의 끝에서, 나는 모아둔다는 것에 대해 골똘해졌다.

우리는 무엇을 모으고 있는 걸까. 동전인가, 시간인가, 아니면 이런 밤들인가. 그리고 모아둔 것은, 결국 깨야만 쓸 수 있는 걸까. 저금통 모양의 간판 아래에서, 나는 아직 답을 정하지 못한 채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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