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의 어느 밤, 영일만에서 멀지 않은 골목에 Tilt라는 펍이 있었다. 노란 간판에 검은 글씨로 TILT BAR N GRILL이라 적혀 있었고, 그 아래 작은 글씨로 Take Out 254-2344. 입구에는 강한 백색 스포트라이트 몇 개가 어둠을 밀어내며 간판을 비추고 있었다. 펍 입구 자체가 작은 무대처럼 보였다. 그 안쪽으로 다트보드가 보였고, 큰 화면 두어 개에서 어떤 스포츠 경기가 흘러가고 있었다.

미국식당 맛집이라는 추천을 받고 찾아간 곳이었다. 처음에 머릿속에 그렸던 것은 묵직한 수제버거 한 덩어리. 두툼한 패티에 체다치즈와 베이컨, 그리고 빵 위로 흘러내리는 스페셜 소스. 그런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그날은 수제버거를 판매하지 않는다고 했다. 주방 사정 때문일 수도, 재료의 문제일 수도 있었다. 작은 가게에서는 가끔 그런 일이 생긴다. 메뉴판에 적혀 있어도 그날에는 만들지 못하는 음식이 있다. 그것이 작은 가게의 인간적인 면이기도 하다. 모든 약속이 매일 지켜지는 가게는 어쩌면 사람의 가게가 아닐지도 모른다.
대신 타코를 시켰다. 잠시 후 빨갛고 흰 체크무늬 종이가 깔린 동그란 바구니 두 개가 도착했다. 한 바구니에는 두 개의 타코, 다른 바구니에는 작은 부리토와 라임 한 조각. 옆에 버드와이저 한 병이 놓였다. 1876년 세인트루이스에서 아돌프 부시(Adolphus Busch)가 만들어낸 그 라거. 미국 노동자의 술이자 전 세계의 술이 된 라거 한 병이 영일만의 작은 펍 테이블 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타코는 분명 미국식이었다. 멕시코의 거리에서 먹는 작은 코너 타코, 옥수수 토르티야에 양고기와 고수만 얹은 그 단순한 형태와는 달랐다. 이쪽은 체다치즈가 듬뿍 들어 있고, 양상추와 토마토가 함께 올라가고, 살사가 진하게 발려 있었다. 미국이 멕시코 음식을 받아들여 자기 식으로 다시 만든 형태. 학자들은 그것을 텍스멕스(Tex-Mex)라 부른다. 19세기 텍사스의 멕시코계 주민들이 만들어낸 음식이 20세기를 거쳐 미국 전역으로 퍼지면서, 음식은 더 풍성해지고 더 단순해졌다. 풍성하다는 것은 치즈와 토마토와 사워크림이 더 들어갔다는 뜻이고, 단순하다는 것은 본래의 향신료가 살짝 평탄해졌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것이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모든 음식은 이주의 흔적을 지닌 채 변형된다. 변형되지 않는 음식은 살아남지 못한다.
타코를 한입 베어 물었다. 토르티야가 살짝 부드러워진 상태였고, 그 안의 고기는 잘게 다져진 채 양념이 배어 있었다. 라스베가스의 어느 다이너에서 먹었던 타코의 기억, 혹은 텍사스 어느 작은 마을에서 먹었던 카르네 아사다 타코의 기억이 잠시 겹쳤다. 그러나 여기는 포항이었다. 영일만의 봄바람이 골목을 따라 지나가는 한국 동해안의 도시.

가게 안을 다시 둘러보았다. 손님의 절반 이상이 외국인이었다. 짙은 피부의 아프리카계 사람들, 그리고 영어로 말하는 미국인들. 그들은 다트를 던지고 있었고, 화면 속 어떤 경기를 향해 가끔 함성을 질렀다. 한국어보다 영어가, 영어 사이에 가끔 다른 언어가 더 많이 들렸다. 포항에 이런 곳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생각해보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포항에는 캠프 무적(Camp Mujuk)이라는 미해병대 기지가 있다. 한국전쟁 시기 미군이 포항 해안에 상륙한 이후, 미해병대는 한국 해병대와의 합동 훈련을 위한 작은 기지를 이 도시에 두었다. 포항 오천읍 어딘가에 자리한 그 기지는 한반도에 주둔하는 미해병대의 유일한 상설 시설이다. 70여 년의 시간이 그 안에 차곡차곡 쌓였다. 그리고 한쪽으로는 포스코의 거대한 제철소가 있고, 거기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엔지니어들이 일한다. 도시 하나에 두 개의 다국적 핵이 있는 셈이다. 그 사이에 Tilt 같은 펍이 있다. 어디에서 왔든, 무엇을 하든, 한 잔의 맥주와 한 바구니의 타코 앞에서는 같은 사람이 되는 작은 무대.

펍(pub)이라는 단어 자체가 흥미롭다. Public house의 줄임말. 공공의 집이라는 뜻이다. 18세기 영국에서 정착된 이 형태의 술집은 누구든 들어와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의미했다. 사적인 거실이 아니라 공적인 거실. 카페보다 시끄럽고 식당보다 느슨한 공간. 그것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바(bar)와 합쳐졌고, 다시 한국으로 건너오면서 한국식 펍이 되었다. 그리고 포항의 어느 골목에서, 다트를 던지는 외국인들과 타코를 먹는 한국인이 함께 있는 형태로 다시 한 번 변형되었다.
벽에는 ABNORMAL BEER CO라는 검은 깃발이 걸려 있었다.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의 수제맥주 양조장. 2014년 매트 다카미네라는 셰프가 친구들과 함께 시작한 작은 양조장이었다. 외국인 단골 중 누군가가 들고 왔거나, 가게 주인의 취향일 것이다. 펍의 벽에는 늘 그런 깃발들이 있다. 한 잔의 맥주가 어디에서 왔고, 누구의 손을 거쳐 여기에 닿았는지를 기록하는 작은 표식. 누군가의 여정이 깃발 한 장으로 압축되어 있다.
다트 보드의 다트가 코르크에 박히는 소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들렸다. 텅, 텅, 텅. 다트 게임 자체도 영국의 펍 문화에서 시작되었다. 14세기 잉글랜드의 병사들이 짧은 화살을 와인 통의 밑바닥에 던지며 즐기던 놀이가 시간이 흘러 정형화된 게임이 되었다. 그리고 그 게임이 미국으로 건너가고, 또 일본으로, 한국으로 건너왔다. 한 잔의 맥주와 다트 한 다발, 그것이 펍이라는 형식의 핵심이다. 마시고, 던지고, 떠들고, 다시 던진다. 단순한 반복이 사람을 편안하게 만든다. 일정한 리듬이 어색한 외국어 너머에서도 어떤 안도를 만들어낸다.
수제버거를 먹지 못한 아쉬움이 가시지 않았다. 처음 메뉴판을 봤을 때 머리에 그렸던 그 두툼한 패티의 형상이, 타코를 다 먹은 후에도 여전히 어딘가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못 먹은 것이 있어야 다음에 또 올 이유가 생긴다. 모든 가게에는 그런 식의 미완의 약속이 있다. 그것이 단골을 만든다. 한 번에 모든 메뉴를 먹어버린 가게에는 다시 갈 이유가 빈약해진다.
음악으로 치자면 이 펍은 톰 페티의 록 음악 같았다. 너무 거칠지도 않고 너무 부드럽지도 않은, 적당히 마시기 좋은 미국의 한 시절. 「Free Fallin'」이나 「American Girl」 같은 곡이 어딘가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흘러나오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펍의 음악이라는 것은 늘 그런 식이다. 분명히 들었지만 무엇을 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 그러나 그 자리에 있었음을 증명하는 어떤 배경.
가게를 나서며 다시 한 번 입구의 노란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TILT라는 네 글자. 영어 단어로 tilt는 기울다, 기울이다는 뜻이다. 술잔을 기울이는 그 동작. 핀볼 게임에서 기계를 살짝 흔들 때 나오는 경고 메시지. 누군가의 균형이 한쪽으로 치우치는 순간. 작명의 의미는 알 수 없으나, 어떤 식이든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잔이 기울고, 사람이 기울고, 도시가 기우는 어느 봄밤.
영일만의 바람이 골목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70여 년 전 미군이 처음 포항에 발을 디뎠던 그 바닷가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그 후예들이 다트를 던지고 있었고, 그 옆에서 한국인 한 사람이 부리토를 먹고 있었다. 역사는 그런 식으로 이어진다. 거창하지 않게, 일상의 한 바구니 안에. 한 잔의 라거와 한 조각의 라임 안에.
다음에 또 올 수 있을까. 그때는 수제버거를 먹어볼 수 있을까. 포항이라는 도시의 한쪽 구석에서, 한국 안의 작은 미국이 매일 저녁마다 펼쳐지고 있었다. 그것을 본 것만으로도 그 밤은 충분했다. 잔을 한 번 더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