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STX리조트 안의 산내음BBQ라는 곳에 들어섰을 때 나는 잠시 멈칫했다.
문 위쪽에 "Happy Together"라고 영어로 쓰여 있었고, 바로 아래에 포크와 나이프 실루엣이 그려져 있었다. 행복을 함께. 식당이라기보다 가족 상담실 같은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옆의 붉은 푯말에는 "산내음BBQ 셀프이용"이라고 적혀 있었다.

셀프. 이 단어에는 묘한 슬픔이 있다.
자리를 안내받는 일도, 메뉴판을 받는 일도 없었다. 입구에 키오스크 한 대가 서 있었고, 화면에는 문경약돌돼지 삼겹살과 목살의 사진이 나란히 떠 있었다. 가격을 터치하고 카드를 밀어 넣으면, 화면이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주방 프린터가 영수증을 뱉어낸다. 뒤쪽에서 고기를 썰던 분이 조용히 나와 접시에 담긴 생고기를 건네주었다. 스테인리스 불판과 가위, 집게, 소주잔까지 모두 스스로 챙겨야 했다. 테이블까지 운반하는 일도 물론 본인 몫이다.

키오스크 앞에서 주문을 마친 손님들이 뜻밖에도 전혀 서먹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 정도의 거리감이 편하다는 얼굴들. 주문을 받는 사람도, 주문을 하는 사람도 서로의 기분을 살필 필요가 없다. 친절을 강요하지 않는 관계는 종종 친절보다 편하다. 재즈 클럽의 바텐더와 손님 사이와 비슷하다. 눈인사 한 번으로 충분하고, 술을 더 달라고 할 때도 손가락 하나만 올리면 된다. 다만 셀프는 우리에게 작은 노동을 요구한다. 그 노동의 대가로 고기 한 점의 값이 500원쯤 깎여 있는 셈이다.
자리에 앉아 불을 붙이고 접시를 내려다봤다. 삼겹살 두 덩이, 목살 세 덩이, 그리고 새송이버섯 몇 조각. 불판은 둥근 돌팬이었다. 회색 자갈 무늬가 박혀 있는 묵직한 팬. 고기가 익으며 흘러나오는 기름이 작은 결 사이로 천천히 빠져나갔다. 돌이 고기를 굽는다는 감각은 생각보다 원시적이다. 구석기인이 모닥불 옆 납작한 돌을 달구어 그 위에 살점을 올리던 장면과 근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돼지는 정말 돌을 먹었을까.
문경약돌돼지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 이름이 어쩐지 농담 같다고 생각했다. 돌 먹는 돼지. 풍자 동화 제목 같기도 하고, 이솝우화의 한 편 같기도 하고. 하지만 문경시의 브랜드 설명을 찾아 읽어보면, 이 이름은 의외로 진지하다.
약돌(藥石)이란 문경 일대에서
채굴되는 특정 화성암을 말한다.
국내에서는 주로 거정석이라 불리고,
일본에서는 약석(薬石)으로 표기한다.
장석과 석영, 운모가 섞여 있고,
게르마늄과 셀레늄, 칼슘, 마그네슘 같은 미네랄이 풍부하다고 알려져 있다.
돌 자체가 약이라니.
이 땅의 사람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그 돌을 끓여 마시거나 곱게 빻아 약으로 써왔다.
약돌을 사료에 섞는 방식이 축산업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1970년대 일본이 먼저였다. 한국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연구가 진행되었고, 문경은 1998년 전후로 "문경약돌한우"와 "문경약돌돼지"를 지역 공동 브랜드로 공식 등록한다. 사료 전체 중량의 약 0.3에서 1퍼센트 정도. 많지도 적지도 않은 비율로 곱게 간 약돌 가루가 돼지의 일상 식단에 섞여 들어간다. 돼지는 그것을 먹으며 자라고, 그 돼지가 지금 내 돌판 위에서 천천히 익고 있다.
효능이라는 단어는 과장되기 쉽다. 약돌을 먹인 돼지에서 잡내가 줄어든다는 주장은 경험적으로는 어느 정도 일치하는 결과를 낸다. 광물질이 장내에서 가스와 냄새 성분을 일부 흡착한다는 가설. 미네랄 공급이 사료 효율을 미세하게 높여준다는 보고. 지방 비율이 약간 개선된다는 데이터. 과학적으로 완벽하게 증명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고, 그렇다고 완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고 단정하기도 어려운 중간 지대에 이 돌은 놓여 있다. 나는 이런 애매한 영역이 오히려 좋다. 모든 것이 명확하게 판정되는 세상은 조금 재미없으니까.
먼저 삼겹살을 올렸다. 기름이 빠르게 녹아 돌판 전체로 퍼졌다. 치직, 하는 소리가 났다. 소리가 일정한 리듬을 타기 시작하면 그 식당의 분위기가 비로소 완성된다. 한참을 뒤집어 노릇해진 조각을 집어 입에 넣었다. 기름이 가볍고 고소했다. 특별히 잡내는 없었다. 꽤 좋은 삼겹살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 다음 목살을 올렸다. 그리고 목살 한 입을 먹고 나서 나는 잠시 집게를 내려놓았다.삼겹살보다 목살이 훨씬 맛있었다.

이 가게의 목살이 특별히 뛰어난 것인지, 아니면 문경약돌돼지라는 품종의 특성이 목살 쪽에서 더 잘 드러나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 돼지는 삼겹살보다 목살이다. 기름은 적고 결은 촘촘했다. 씹을수록 단맛이 배어 나왔다. 마이야르 반응으로 생긴 갈색 크러스트가 이빨 아래에서 부서지면서 고기 내부의 수분이 입 안에 퍼졌다. 목살의 결 사이로 스며든 돌판의 열이 작은 수증기를 만들어내고, 그 수증기가 씹을 때마다 조금씩 터져 나왔다.
새송이버섯 한 조각을 돌판 가장자리에 올려 두었다. 버섯은 기름을 빠르게 빨아들인다. 고기에서 흘러나온 기름이 돌의 결을 따라 흘러 버섯 쪽에 고이고, 버섯은 그것을 다시 자기 안으로 흡수한다. 식물의 스펀지 같은 조직이 동물의 지방을 저장하는 장면을, 나는 고깃집에 올 때마다 조금 감탄하며 바라본다. 새송이는 1970년대 유럽에서 재배가 본격화되어 1990년대 한국에 도입된 비교적 젊은 버섯이다. 자연산 송이와는 전혀 다른 종이지만 결이 비슷해서 송이라는 이름을 빌렸다. 이름을 빌려 쓴다는 건 겸손한 일이기도 하고, 교묘한 일이기도 하다.
문경의 지질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이 지역의 산들은 중생대 쥐라기부터 백악기에 걸쳐 형성된 화강암과 그보다 오래된 변성암이 섞여 있다. 석회암 지대도 있어서 문경은 오래전부터 시멘트 산업의 주요 원료 공급지였다. 같은 산속에 시멘트가 되는 돌과 약이 되는 돌이 함께 누워 있다는 사실. 어떤 돌은 도시를 세우는 재료가 되고, 어떤 돌은 돼지의 사료에 섞여 저녁 식탁까지 온다. 똑같이 땅속에서 수천만 년을 보낸 돌인데, 쓰임이 이렇게 갈린다. 인간의 분류는 자연이 관여할 수 없는 종류의 질문이다.
돌판 위에 고기를 구우면서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이 돌과 저 돼지가 어느 시점에서 만났을까. 돼지는 생전에 약돌을 갈아 넣은 사료를 먹었다. 그 사료가 장을 거치면서 돼지의 몸은 미량의 미네랄을 품었다. 돼지가 도축되고 부위별로 나뉘어 이 가게의 냉장고에 들어왔다. 그리고 다시, 전혀 다른 맥락의 돌판 위에서 구워진다. 광물의 세계와 동물의 세계가 두 번에 걸쳐 만나는 셈이다. 한 번은 먹이로, 또 한 번은 불판으로. 돼지의 몸을 지나간 약돌의 기억이 지금 돌판 위에서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 식사는 꽤 시적인 구조를 갖는다.
문경(聞慶)이라는 지명이 경사스러움을 듣는 땅이라면, 이 도시의 땅속 돌은 경사스러움을 기르는 셈이다. 돌에서 미네랄이 나오고, 그 미네랄이 사료에 섞이고, 사료가 돼지를 키우고, 돼지가 결국 사람의 몸으로 들어간다. 인간은 먹이사슬의 끝에서 지질학을 먹는다. 뜻밖의 표현이지만, 문경약돌돼지를 먹는 행위는 어떤 의미에서 문경의 지질을 먹는 행위다. 조용히 수백만 년 동안 쌓여온 암석이 단 몇 분의 마이야르 반응으로 혀끝에 도달한다. 시간의 축약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셀프 서비스라는 형식도 생각보다 잘 어울렸다. 내가 직접 고기를 뒤집고, 내가 직접 가위질을 하는 동안, 나는 이 저녁의 주인이 된다. 누구의 추천도, 누구의 서비스도 없이, 돌판과 나 둘만의 시간이 흐른다. 고기가 익는 속도는 내가 결정하고, 한 점의 크기도 내가 결정한다. 그 자율성이 결국 식사의 집중도를 바꾼다. 좋은 식사는 화려함이 아니라 집중에서 완성된다는 사실을, 이 키오스크가 우연히 증명하고 있었다.
계산 없이 일어섰다. 이미 선불로 결제를 마쳤기 때문이다. 빈 돌판을 정리하는 일만은 직원 몫이었다. 그것만은 셀프가 아니라는 점이 재미있다. 들어올 때는 스스로, 나갈 때는 맡기고. 입구의 "Happy Together" 간판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함께 행복하다는 말은 결국 함께 있는 시간 동안만 유효한 약속이다. 식사가 끝나면 사람들은 각자의 방으로 돌아간다. 어떤 이는 콘도 객실로, 어떤 이는 밤의 고속도로로.
문경은 경사스러움을 듣고, 약돌은 돼지를 기르고, 돼지는 사람을 먹인다. 그리고 사람은 다시 길을 떠난다. 그 순환의 어딘가에 오늘 저녁 구운 목살 한 점이 들어 있을 것이다. 그 한 점이 내 몸 어디를 지나 어디로 흘러갈지, 나는 알 수 없다.
다만 돌은 여전히 문경의 땅속 어딘가에서 단단히 누워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