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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과 바꾸는 맛, 싱글벙글 복어매운탕

용자8072 2026. 4. 23. 20:20

복어는 목숨과 맞바꾸는 맛이다.

소동파(蘇東坡, 1037~1101)는 960년 전에 이미 그 말을 했다. 송나라의 문인이 복어 한 점을 입에 넣고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值那一死." 그 죽음의 가치가 있다. 간결하고도 무서운 말이다.

테트로도톡신(Tetrodotoxin). 복어 독의 이름이다. 청산가리의 1,200배. 신경을 마비시켜 호흡을 멈추게 한다. 해독제는 없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먹는다. 겨울이 오면, 혹은 그냥 생각이 나면, 복어 집을 찾아간다. 인간이란 참 이상한 동물이다.

구미에 싱글벙글복어라는 집이 있다. 이름이 좋다. 싱글벙글. 복어를 먹으면서 싱글벙글 웃는다는 건지, 아니면 복어가 원래 싱글벙글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건지. 복어는 천적을 만나면 물을 들이마셔 몸을 세 배로 부풀린다. 동그랗게 부푼 그 형상이 어딘가 우습기도 하고 처연하기도 하다. 죽음을 앞두고 커보이려는 절박

한 몸짓.

이 집은 오래된 집이다.

건물 외벽의 페인트가 말해준다. 초록과 파란색이 섞인 외관, 세월을 먹은 간판 글씨. 새로 단장한 흔적이 없다. 그게 좋다. 리모델링을 거친 노포는 어딘가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보인다. 과거를 지워버린 채 젊은 척하는 얼굴. 이 집은 그렇지 않다. 시간이 그대로 쌓여 있다. 간판 아래 전화번호도 예전 형식 그대로다. 하지만 이미 리모델링은 최근은 했다.

복어 매운탕을 주문했다.

지리가 아니다. 이 집은 처음부터 끝까지 매운탕이다. 지리는 부산 쪽이 좋다는 걸 안다. 맑은 국물에 복어를 넣고 미나리와 두부를 더한 그 담백함. 부산 자갈치 시장 근처의 복어 집들이 그렇게 낸다. 흰 국물이 투명하게 빛나는 지리탕. 그것도 훌륭하다. 하지만 오늘은 그게 아니다. 오늘은 진한 맛이 필요했다.

 

스테인리스 냄비가 인덕션 위에 올라왔다. 빨간 양념 위로 미나리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복어 살이 국물 아래로 잠겨 있고, 옆에는 양념장이 담긴 작은 그릇. 불을 켜자 국물이 끓기 시작했다. 냄새가 먼저 왔다. 마늘 냄새였다. 강하고 깊은 마늘 향. 그것이 이 집의 핵심이다.

마늘.

생각해보면 마늘은 한국 음식의 근원 같은 것이다. 단군신화에서 곰이 사람이 되기 위해 먹었던 것이 바로 마늘과 쑥이었다.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고 마늘과 쑥만 먹으라는 조건. 호랑이는 포기했고, 곰은 버텼다. 3,000년 전의 이야기다. 그래서인지 한국인은 마늘을 먹으면서 어떤 원초적인 무언가로 돌아가는 기분이 든다. 날것의 감각. 흙 냄새 같은 것.

싱글벙글복어의 매운탕은 마늘을 진하게 쓴다. 고추의 매운맛보다 마늘의 진득한 맛이 앞선다. 국물은 가볍다. 복어가 몸집을 키우는 공기같다. 복어 살을 하나 건져 먹었다. 결이 있다. 흰 살 생선 특유의 층층이 나뉜 질감. 씹으면 달콤한 맛이 먼저 오고, 그 뒤로 마늘의 여운이 온다. 시큼한 맛.지리의 담백함과는 전혀 다른 세계다.

복어의 살은 독이 없다.

독은 주로 간장, 난소, 피부에 집중되어 있다. 복어조리기능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만 복어를 손질할 수 있다. 1972년에 도입된 제도다. 그 이전에는 매년 복어 중독 사고가 있었다. 지금도 면허 없이 복어를 조리하면 식품위생법 위반이다. 음식 하나에 국가 자격증이 필요한 경우는 드물다. 복어가 그렇다. 독을 제거하는 손길에 기술과 신뢰가 동시에 담겨 있다.

소동파는 복어를 직접 먹었다. 그가 복어를 언급한 시가 있다. 「혜숭춘강만경(蕙崇春江晚景)」 연작 중 하나다.

竹外桃花三兩枝,대나무 밖에 복숭아꽃 두세 가지,

春江水暖鴨先知。봄 강물 따뜻해짐을 오리가 먼저 안다.

蔞蒿滿地蘆芽短,갈대밭 가득하고 갈대 싹이 짧을 때,

正是河豚欲上時。바로 복어가 강을 오르려는 때로다.

대나무 밖에 복숭아꽃 두세 가지, 봄 강물 따뜻해짐을 오리가 먼저 안다. 갈대밭 가득하고 갈대 싹이 짧을 때, 바로 복어가 강을 오르려는 때로다.

봄이다.

복어가 산란을 위해 강을 오른다. 소동파는 그 계절감을 포착했다. 자연의 움직임을 읽는 눈. 오리가 수온을 먼저 안다는 것도 섬세한 관찰이다. 그리고 그 맛을 "값어치는 죽음도 넘어선다"고 표현했다. 목숨과 맞바꿀 만하다는 말. 1,200배의 독을 품은 생선에 대한 찬사. 시인이란 참 담대한 존재들이다.

일본에서는 복어를 후구(河豚)라고 쓴다.

강돼지. 복어가 잡혔을 때 꿀꿀거리는 소리를 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일본에서 복어 요리를 둘러싼 역사는 금기와 욕망이 교차한다. 에도 시대에는 무사 계급이 복어를 먹으면 할복이라는 처벌을 받았다. 전투력을 잃을 수 없다는 이유였다. 1887년에야 이토 히로부미가 합법화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금지될수록 욕망은 더 강해진다. 인간의 심리가 그렇다.

밥이 나왔다.

은색 가마솥에서 퍼낸 밥이다. 그릇이 두껍고 묵직하다. 밥알이 서 있다. 눌어붙지 않고 고르게 익은 밥. 윤기가 돈다. 밥솥으로는 낼 수 없는 질감이 있다. 쌀알 하나하나가 독립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그렇다. 전기밥솥의 밥은 촉촉하고 부드럽지만 입 안에서 금방 뭉친다. 가마솥 밥은 다르다. 씹을 때 저항이 있다. 좋은 의미의 저항.

 

주방을 잠깐 들여다봤다. 은색 알루미늄 가마솥들이 가스 불 위에서 조용히 달구어지고 있었다. 뚜껑을 닫은 채로. 밥이 익어가는 중이었다. 뚜껑 손잡이가 작고 납작하다. 주방 선반에는 스테인리스 그릇들이 가지런히 엎어져 있었다. 오래된 주방이다. 동선이 몸에 밴 주방. 정말 특이한 오픈 주방이다.

매운탕 국물에 밥을 말았다. 빨간 국물이 흰 쌀밥 위로 스며들었다. 한 숟가락. 마늘과 고추의 칼칼함, 복어 살에서 우러난 단맛, 그리고 윤기 있는 밥알. 세 가지가 동시에 왔다. 이런 순간에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게 된다. 그냥 먹는다. 배가 고팠는지, 맛이 좋은 건지, 그 경계도 흐릿해진다. 인간의 뇌가 가장 조용해지는 순간 중 하나다.

복어의 한자 이름은 여러 가지다. 河豚(강돼지), 鰒魚(복어), 흰 살 생선이라는 의미에서 白魚라고도 불렀다. 일설에 따르면 순우리말 '복어'의 복(福)은 복이 많다는 뜻이라고 한다. 독이 있는 생선에 복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재미있다. 위험한 것일수록 더 간절히 복을 빈다. 인간의 심리가 그렇다. 독을 품은 것에서 복을 찾는다. 어쩌면 그게 인간이 살아온 방식이기도 하다.

미나리를 건졌다.

국물에 푹 익은 쪽파는 매운기가 빠지고 달콤해져 있었다. 복어 살 한 조각, 쪽파 한 줄기, 밥 한 숟가락. 단순한 조합이지만 밀도가 있다. 고급 레스토랑의 복잡한 구성이 아니다. 오래된 집의 단순한 음식. 그 단순함에 수십 년의 조율이 담겨 있다.

구미 싱글벙글복어

이름처럼 싱글벙글하게 먹고 나왔다. 매운탕 국물은 가볍지만 묵직했고, 가마솥 밥은 윤기가 흘렀다. 복어 살은 단단하고 결이 있었다. 마늘 향이 오래 남았다. 밖으로 나오자 저녁 공기가 서늘했다. 봄이라고는 해도 저녁은 아직 차다. 좋은 식사 후의 그 포근한 감각. 몸이 데워진 채로 걷는 것.

소동파가 "값어치는 죽음과도 바꿀 수 있다"고 했을 때, 그는 정말 죽음을 각오했던 걸까. 아니면 그냥 맛이 있었던 걸까. 나는 살아서 매운탕을 먹었고, 가마솥 밥을 먹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면 소동파가 말한 그 "목숨과 맞바꾸는 맛"이라는 것은, 단순히 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무언가에 완전히 몰입하는 순간에 대한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 밥 한 숟가락에 아무 생각이 없어지는 그 순간. 그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잠시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매일 저녁, 조금씩 죽었다가 살아난다.

정말 추천하는 영혼의 음식이다. 특히 술먹은 다음날.